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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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필) 공부는 어째 해야 하나
2014년 11월 25일 20시 16분  조회:707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공부는 어째해야 하나?
 
                                      진 언
 
   공부는 어째 해야 하나? 하는 물음은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격으로 뜬금없기도 하고 달을 보고 짖는 황둥이를 보고 왜 멋없이 짖느냐고 물어보는것처럼 우답도 없는 우문인데 손자놈이 왜 공부해야 하고 또 꼭 잘해야 하나? 하고 물을 때 입으로 단마디명창을 못하고 내심으로 대답해본다. “글쎄나…생뚱같은 물음인데 그것은 나에게도 아직까지 의문이구나…” 그러고나서 나는 아이에게 그냥 공부잘하라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열살도 안되는 아이에게 인간은 자연인과 사회인으로 나누는데 갓태여난 애는 자연인으로서 차차 커서도 교육을 받지 못하면 그냥 자연인으로 남는다고, 사회인으로 되여 힘들지 않게 벌어먹고 살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인도의 밀림속에서 발견한 승냥이소녀를 례로 들어 장황하게 설명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누구나 자랄때는 가끔씩 공부하기가 싫은데 재촉이 성화같은 엄마에게 “공부는 왜하냐?”고 물어보았을것이다. 그때마다, 이런 변명, 저런 변명, 아전인수하며 고식지계(姑息之计) 로 틀어막기에 급급해서 웬 뚱딴지냐고 막 밀어붙이기가 일쑤였으리라.
    100점의 굴레를 쓰고 등떠밀려 공부해야 하는 불쌍한 아이들, 공부하는 법도 모르고 그저 하라니까 교과서와 온갖 잡다한 련습책, 훈련책과 싱갱이질하는 아이들을 가긍하다고 말하면 누구는 그 과정을 안거쳐왔나? 하고 퉁을 놓을것인데…사실 우리도 아이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더구나 시험기가 되면 족집게 과외가 기승이고 번갯불에 콩볶아먹듯 날림으로 머리속에 마구집어넣은 지식들이 시험만 끝나면 사막모래 바람불듯이 부는 바람에 어느새 휭~사라지는것은 아닐가?
   아이는 “왜?”라고 묻는데도 “어떻게”로 대답해주는 어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진화된것”이 없다. 좋은 명패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남을 다스리는 뇌력로동자로 되기 위해서, 당장 공부못하면 선생님의 눈에 나고 애들속에서 외목이 나니까, 엄마가 잘못하면 혼쭐난다고 하니까, 못하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니까…나도 가슴에 손을 얹고 되돌아보면 춘하추동, 불철주야로, 엄동 설한에 옷도 변변히 입지못해 고추를 얼구면서도 맨날 학교에 가고 악바리로 공부한 리유도 상술한 리유중에 꼭 짚어 하나랄것도 없이 여러개에 걸쳐 포함되여있다.
   공부못하면 호미대학에나 붙어서 소궁둥이나 두드린다는 엄마의 말이 얼마나 실용적인 말이였는지도 모른채 공부했지만 어찌하여 반평생나마 짜증나도록 소궁둥이를 묻어다니면서 그제야 “송궁둥이를 두드리는” 고충을 삼백륙십사절골이 다 저리도록  절감하였다. 지금은 시내에서 사는 늙은이니까 두드릴 소궁둥이를 마련해줄수 없으니 무엇으로 손자를 겁줘야 할지 대책이 없다. 잘못하면 직업의 비천을 오도하게 되니…
   공자와 자공(子貢)의 대화가 생각나기는 했다. 얘긴즉, 자공이 배움에 싫증나서 공자에게 청들었다. "좀 쉬였으면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인생은 휴식이 없는것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저는 휴식할수 없다는 말입니까?" 공자가 그말에 "있지, 저 무덤을 바라보라, 높이솟아있고 크고 볼록하고 세상과 고립된 모습인데 휴식하고 있다는것을 말하고있지." 라고 대답했다. 무식이 상팔자라도, 식자우환이라도, 아는게 병이라도 리유가 없이 공부는 해야한다는 리유를 들수도 없어서 그저 마냥 입버릇처럼 하는 말로 윽박지르는 방법밖에 없다. “그냥 공부잘해라!”
   화제를 돌려서 지각이 튼 큰애들을 상대로 갖잖은 리론을 펼쳐보자. 지금은 지식경제시대일뿐아니라 지식활용의 범위로 말하면 글로벌시대로서 아는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명언은 영원한 진리로 되고있다. 사람은 무엇이나 많이 가지려고 하는 본성을 개변할수 없거니와 그럴필요도 없다. 가진다는것에는 크게 나누어 물질적인것과 정신적인것 두가지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물질적소유를 앞에 놓고있는데 그것을 두고 왈가왈부할것은 없으되 정신적재부는 필수적이요 대물림이다.
   썩어빠질대로 썪어빠진 봉건통치시대, 봉건제왕들은 우민정책에 재미를 많이도 보았을게다. 그러나 일인천하 막강한 권력이던들 발전하는 시대의 거륜을 어찌 막아내며 차차차 문명개화하는 백성들의 지각을 그 무엇으로 압제하랴, 민초들이 아는게 많아지면 통치하기 어려울것을 아는 그들은 꽤나 총명하다고 하리라. 코흘리개황제, 어리석은 혼군도 마키아벨리가 말한것처럼 권력은 야수적속성 즉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론리만을 알아서 권력이라는 사회필요악을 내둘렀던것이다.
   그래서 공부한후에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막연한 후사가 제기된다. 대도리는 공부하더라도 공을기같은 무재무능한 글뒤주가 아니라 배워낸 학문의 공익성과 보편성의 지향이다. 그렇다고 “인간세상에서 배운사람 노릇하기 쉽지 않구나” 하고 자결한 황현(黃玹) 의 기개를 요구할수 없고 “나라를 잃고도 살아있으니 부끄러운 인간” 이라고 자책한 박은식(朴殷植) 같이 높은 자성능력을 요구할수 없되 공부할 때 외운 학설중 하나라도 되새겨 일후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그 직무의 본령에 맞는것인지 반성할줄 아는 지식인은 되여야 한다는것은 두말할것 없다.
   일찍, 류형원은 조선조의 위기가 바로 과거제도에 있다는것을 간파하였다. 그는 과거제가 능력 특히 학력은 시험할수 있으나 덕행을 시험할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과시 선철이라 할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대학입시, 공무원시험은 마치 조선말기의 과거와 관직등용제도처럼 배경이 있는 유력자나 부자들의 잔치로 변하고있다.
   기본이 공민의 평균이하인 사람이 “선발”되니 진짜인재가 밀려나고 일부기관에는 사실상 세습이 이루어진다는 공개된 비밀을 보며 오늘의 공부, 지식의 운용, 선발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되지만 “눈을 떠야 별을 보지” 하는 속담처럼 우선은 배워두고 많이 알아두어야 한다. 운명은 누구에게나 기회령감을 보내주기 마련이지만 기회는 언제나 충분히 준비된 자를 먼저 골라잡는 법이다.
   치렬한 시험의 승리자들일수록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과거에는 권력자의 권력봉에, 오늘날에는 부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지식인들의 조우는 슬프지만 배우지 않았다면 더구나 불성모양이 될것이다. 선택된 일부사람들은 자신이 차지한 자리가 인민이 준것임을 알지 못한채 마냥 자신이 잘났기에 당연히 차례져야할 결과라 생각하며 정의의 희생에 눈감고 강자들의 비행에 굴종하면서도 부끄러워할줄 모르지만 그것이 영원히 주류로 될수는 없다.
   2천여년 과거시험을 시작으로 오늘날 대학입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험에서 선발되고 일컬어 인재로 성장했건만 그들이 진정 백성을 위한 공익에 어떤 기여를 했던가? 멀리도 말고 구한말 나라를 살리자던 동학군과 개화파를 릉지처참하고서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고관대작들, 식민통치가 3천만 백의겨레를 가혹하게 압박착취하며 그렇게 횡포를 부릴때 그들의 수족이 되여준 매국노들 모두 일본의 제국대학이나 동경대학이나 무슨무슨 대학시험에서 우승한 시험선수들 아니였던가?
    그래서 지식자체에는 민족정신, 인간도덕률, 량심이란게 없지만 지식이 비정하고 악한자들에게 장악되면 그것은 그저 역으로가 아니라 사회죄악으로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 흉기로 되고만다. 례컨대 법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법학개론의 기초와 전혀 배치되는 범법을 하거나 신성한 교단에 선 교원이 학생들을 개인의 돈나무로 여긴다거나 지식을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삼아 비리한 일을 저지른다면 그 우수한 머리와 다년간의 공부, 시험통과가 결국 나무아미타불이 되는것이 아니겠는가?   

                                  2013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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